―미국인들은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알고 있다.
“착각이다.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subtle)하다. 미국인들이 자주 웃기 때문에 단순하고 행복하다고 비친다. 그렇지 않다. 난 헝가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래서 미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인은 웃고 있지만 내면에는 불안(anxiety)을 안고 있다. ‘당연히 최고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쩌나’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이는 미국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동시에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래서 미국은 앞으로도 중국을 필요로 할 것이다. 과거에 소련과 일본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우리를 압도할지도 모른다는 긴장을 미국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이다. 미국인의 영혼은 언제나 그런 불안을 찾아다닌다.
기억하라. 우리는 조상들이 다른 나라에서 실패해 이리로 온 사람들이다. 미국의 정신은 이민의 역사와 엮여 있다. 그래서 외부인에게 ‘우리는 실패자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늘 중요했다. 내 경우 헝가리에서 살 곳이 없어 미국으로 왔다. 부모님은 교육에 열성을 쏟았다. 미국 이민자들은 고향 사람에게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끈 원동력이다. 미국으로 온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가장 큰 수모는 무엇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미국이다. 소련? 일본? 중국? 누구든 미국을 압도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발췌: 조선비즈
데일 어비(63)
PanAm Stratocruiser in Queens, NY, March 1951.
Photograph by B. Anthony Stewart, National Geographic
Another Earth, 2011
1.
To Rome with Love, 2012
2.
Rust and Bone, 2012
3.
중학생때 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주말만 되면 꼭 영화를 봤다.
한참 어렸을땐 “유말의 명화” 라고 잘못 발음하던 “주말의 명화” 를 볼 때도 있었고,
공중파가 흥미를 끌지 못 할 땐 어김없이 동네 상가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그곳은 인상 좋으신 한 중년의 노부부가 운영 하셨는데
당시 프랜차이즈 대여점 같이 한편의 최신영화를 수십 개씩 갖다 놓진 않았다.
마치 용산 CGV에 아이언맨3 상영관이 8개나 되는 것 처럼.
언제든 원하는 최신영화를 볼 수 없는 환경 덕분에 “신(新) 프로” 보다는
아버지가 한참을 고르고 골라야 되는 “구(久) 프로” 를 봐야될 때가 많았다.
굉장히 모험적이고 고전적이었던 시간들.
세월이 흘러 비디오와 대여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어느덧 서른을 넘긴 나는 잘난체 하며 아버지 대신 영화를 고른다.
99% 인터넷 다운로드 받아서. 중간에 재미 없으면 다른 영화를 받기도 하고.
화면의 크기도, 화질도, 음질도 모두 월등히 커지고 좋아졌다.
그런데 뭘 보든 재미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내 감각의 결핍인지,
아니면 이 월등한 시간이 가져다 준
약간의 삭막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Closer,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