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way, Life Should Go On

 

0. 무언의 고리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영 쉽지 않다. 그 속내가 유치하고 졸렬하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이. 한동안 시선을 낮추고 멍 때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곧고 뻣뻣해지겠지. 거의 매번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깐. 이것을 ‘시간이 주는 회복력’ 이라고, 마치 보통의 심리학 이론 마냥 치부해버리는 순간, 무의식의 어딘가는 헐벗고 상처 받고 영원히 곪아가는 게 아닐까.

의식이 자리 잡지 않은 대부분의 곳들이 문드러진 것 같다. 곧이어 그 자리에 ‘제정신’ 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서서히 마취가 풀리 듯 고통스러워 하겠지. 거만과 오만함으로 얼룩덜룩해진 상처들. 하지만 끝내 또 아무말도 없을지 모른다. 나는 거의 매번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1. 여주

엄마 성묘를 다녀왔다. ‘남한강공원묘원’은 매번 갈 때마다 괜찮은 공동묘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가는 길이 꽤 경쾌하다. 앞 차의 테일라이트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달려야 하는 한국의 고속도로지만, 하남을 벗어나 중부고속도로를 본격 달리기 시작하는 첫 십여 킬로미터 구간은 나름 눈도 즐겁고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든다. 빌딩숲을 벗어나자 특유의 산세가 펼쳐지는 모습이 (나에게 만큼은) 꽤 극적이랄까. 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아 계실 땐 가는 방법에 대해 하도 코치를 하시는 바람에 길이 꽤 어렵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은데, 네비 따라 가니깐 그런 거 없지뭐.

묘지는 뭐랄까 (이름처럼이나) 공원에 더 가까운 풍경이라서, 묘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무거운 공기와 스산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이곳의 최장점인 것 같다. (이를테면 납골당 같은 곳의 우울하고 밑도 끝도 없는 슬픈 분위기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죽어 묻힌 곳일 뿐, 여전히 대답 없는 대화를 이어가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 성묘는 처음으로 혼자 갔다 왔는데, 앞으로는 쭉 혼자 가고 싶어졌다. 아무리 가벼운 발걸음을 한다 해도 묘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기 마련이거든. 가족들 앞에서의 눈물은 뭔가 좀 부끄러웡. 엄만 빼고.

 

2. 아이슬란드

서울 같은 콘크리트 정글에도 자연은 (매우 쉽고 친절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도심 속의 자연은 마치 잘 만든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 같아서,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달려드는가 하면, 누구는 (유통기한이 지났다거나 해서) 데코레이션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적지 않은 딸기가 올려져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극히 대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아이슬란드에 감탄하고 매료되는 건 완성된 케이크의 맛과 형태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한 날 것의 재료들(ingredients)을 툭 던져 주고,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보시오, 라고 대하는 듯한 무심함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가 아닌, 지구라는 ‘행성’ 어딘가에 내버려져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무섭고 외로운.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이곳에서의 (엄청난) 경험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묘사할 수(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여러모로 미성숙해서, 걍 존나 죽여주니깐 너도 한 번 꼭 가봐, 정도의 말 밖에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이야기 잘 안해주는 꼴이 자랑같이 들릴 수도 있겠다만, 이정도면 충분히 우쭐대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 그려.

그러니깐, “너도 한 번 꼭 가봐라. 존나 죽여주니깐.”

 

3. 9월, 그리고 10월의 중간 즈음

나는 (예상치 못하게) 아직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이고 지금은 핀란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헬싱키의 10시 방향 즈음에 있는 Otaniemi라는 근교인데 Aalto University가 크게 들어선, 이를테면 college town 같은 곳이다. 친구 내외 덕분에 잘 먹고 자고 또다른 멋진 경험들을 하고 있다. 고마운 모세와 지연이.

실업자 답게(?) 원웨이 티켓으로 왔으니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 한 달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들 얘기해주지만 이거 영 불안해서 말이지. (민폐이기도 하고!) 아이슬란드의 거친 대자연 속에서도, 이곳의 감동적인 숲길을 걸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셈하고 있는 모습이 딱해 보이기도.

핀란드는 높은 위도에 위치해서 그런지 태양의 궤적이 낮고 완만하다. 날이 맑으면 하루종일 이른 석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새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노오란 볕이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을 쬘 때는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햇빛은 항상 이마 언저리에서 눈이 시리도록 머문다. 미간을 찡그리고 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4. Must Be Another One

Feelin’ so confused
You dont know what to do
Afraid she might not love you anymore
And though she says she does
And hasn’t lost your trust
Who could that be knockin’ at her door?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The feelin’ never stops
And neither does the clock
Wishin’ for tomorrow today
She still says she’s true
So you start comin’ to
Just as that old knockin’ comes to stay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2018.10.10 Otaniemi, Helsinki

Leave a Comment

Name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