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2011년 12월 31일

13시.

눈 뜨자마자 갑자기 농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한창 농구에 미쳐 살던때처럼.

뜬금없이 교보에서 책을 보고 있다는 임군을 강제소환, 국민대에 갔다.

이런 날에도 농구하는 사람들이 있네. 지독하다.

 

무려 10년만에 농구를 해본다는 아저씨, 그리고 그의 풋내기 고등학생 아들,

내 배꼽을 보고는 눈을 가리고 깔깔 거리며 도망가던 풋내기 형의 띠동갑 동생. 이상 우리팀.

죄다 박지성같이 생긴 20대 초반의 녀석들을 당해낼 순 없는 우리였지만 게임은 훈훈했다.

 

이 겨울의 공기보다 더 차가운 물이 식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내 마음도, 네 마음도, 그리고 어쩌면 네 마음도 할퀴고 지나간다.

그렇게 나의, 우리의 20대 마지막 농구. 마지막 수다.

마지막 갈증.

 

18시.

회사 손님들과 저녁을 먹었다. 수제비.

음식이 나오고 양볼이 붉어질수록

창문들 위의 하얀 성에는 점점 짙어졌다.

 

20시.

번호로 여는 대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초인종을 누르시고 들어오시는 아버지.

오늘도 습관처럼 집 초인종을 누르셨고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깜빡했다며 너털 웃음을 지으신다.

 

22시.

2011년,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몇몇은 더 오래된 기억들의 가느다란 연장선,

몇몇은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그 자리에 영속될 기억들.

기쁨과 슬픔, 평온와 분노, 사랑과 증오의 연속이었던 2011년.

내년은 부디 기쁨과 평온, 그리고 사랑만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2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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