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Only We Were Young

1.

아침 알람소리로 하루를 여는 삶을 다시 시작했다. 여전히 한 번만에 일어나지 못하고, 어김 없이 아침밥을 거르고, 온통 잿빛의 하늘만 남은 출근길이지만, 삶의 무게는 꽤 가벼워졌달까. 오로지 감상적 인풋과 물질적 소비만 존재했던 지난 (행복했던) 몇 개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역시 창조적인 아웃풋이 없는 인생은 단조롭고 건조하기만 하다. 아, 노동의 숭고함이여. 아, 월급의 소중함이여..!

 

2.

넷플릭스의 백미는 역시 다큐멘터리가 아닐지. 최근에 본 건 “D-7 카운트다운“이라는 다큐의 “카시니의 마지막 여정” 에피소드. NASA의 토성 무인 탐사선 “카시니(Cassini)”의 마지막 일주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으레 초이지적이고 기승전 “아메리칸 프라이드”로 격파할 법한 소재이나, 의외로 인간적인 측면을 담담하게 어루만진다. 카시니는 무려 20년 동안 토성과 그 주변 위성들을 탐사했다는데, 우리가 본 거의 모든 토성의 이미지들과 관련 정보들은 이 카시니를 통해 얻게 된 것이라고. 지구로부터 12억 8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기계에 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엔딩 스토리가 너무나도 생경하고 감동적이다. 그들이 아니면, 그들의 가족이 아니면, 혹은 미국인이 아니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고 느껴볼 수 없는 형태의 감정들. (일본인들의 “하야부사“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가 손수 만든 범우주적 드라마에 감동하고 눈물 흘리는 날이 올까. 난 안 올 것 같아. 그래서 미국만세.

 

3.

죽음과 가장 멀리있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을까.
며칠 전에 회사 동료와 대화 중 들은 말. 아이슬란드같이 경이롭고 핀란드처럼 아름답다. 아마 올해 최고의 “인풋” 중 하나가 아닐지.

 

4.

그러고보니 아이슬란드와 핀란드의 기억을 곱씹을 새도 없이 한 해가 지나갔네. 아직 불완전 연소된 여운, 그 위를 불투명하게 덮고 있는 얇고 무른 기억의 레이어, 그리고 알람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

And I know in the past we wanted separate roles
Then I chose you, yeah
And I’ve seen the kind of dirt that took my baby from me
Oh, I never told you
Anytime I feel my week is nearly over
I lay awake in all kinds of darkness, Polly

Oh no no no
If only we were young
You’d make me feel hung up

And I know in the past you left me with no heart
How cheap were the nights you used to keep me warm?

Girl no no no
If only we were young
You’d make me feel warm

과거는 마치 블랙홀 같아서,
가까이 갈 수록 더 강하게 끌어 당기고
결국 나는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Anyway, Life Should Go On

 

0. 무언의 고리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영 쉽지 않다. 그 속내가 유치하고 졸렬하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더욱이. 한동안 시선을 낮추고 멍 때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곧고 뻣뻣해지겠지. 거의 매번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깐. 이것을 ‘시간이 주는 회복력’ 이라고, 마치 보통의 심리학 이론 마냥 치부해버리는 순간, 무의식의 어딘가는 헐벗고 상처 받고 영원히 곪아가는 게 아닐까.

의식이 자리 잡지 않은 대부분의 곳들이 문드러진 것 같다. 곧이어 그 자리에 ‘제정신’ 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서서히 마취가 풀리 듯 고통스러워 하겠지. 거만과 오만함으로 얼룩덜룩해진 상처들. 하지만 끝내 또 아무말도 없을지 모른다. 나는 거의 매번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1. 여주

엄마 성묘를 다녀왔다. ‘남한강공원묘원’은 매번 갈 때마다 괜찮은 공동묘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가는 길이 꽤 경쾌하다. 앞 차의 테일라이트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달려야 하는 한국의 고속도로지만, 하남을 벗어나 중부고속도로를 본격 달리기 시작하는 첫 십여 킬로미터 구간은 나름 눈도 즐겁고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든다. 빌딩숲을 벗어나자 특유의 산세가 펼쳐지는 모습이 (나에게 만큼은) 꽤 극적이랄까. 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아 계실 땐 가는 방법에 대해 하도 코치를 하시는 바람에 길이 꽤 어렵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은데, 네비 따라 가니깐 그런 거 없지뭐.

묘지는 뭐랄까 (이름처럼이나) 공원에 더 가까운 풍경이라서, 묘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무거운 공기와 스산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이곳의 최장점인 것 같다. (이를테면 납골당 같은 곳의 우울하고 밑도 끝도 없는 슬픈 분위기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죽어 묻힌 곳일 뿐, 여전히 대답 없는 대화를 이어가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 성묘는 처음으로 혼자 갔다 왔는데, 앞으로는 쭉 혼자 가고 싶어졌다. 아무리 가벼운 발걸음을 한다 해도 묘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기 마련이거든. 가족들 앞에서의 눈물은 뭔가 좀 부끄러웡. 엄만 빼고.

 

2. 아이슬란드

서울 같은 콘크리트 정글에도 자연은 (매우 쉽고 친절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도심 속의 자연은 마치 잘 만든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 같아서,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달려드는가 하면, 누구는 (유통기한이 지났다거나 해서) 데코레이션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적지 않은 딸기가 올려져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극히 대조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아이슬란드에 감탄하고 매료되는 건 완성된 케이크의 맛과 형태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한 날 것의 재료들(ingredients)을 툭 던져 주고,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보시오, 라고 대하는 듯한 무심함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가 아닌, 지구라는 ‘행성’ 어딘가에 내버려져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무섭고 외로운.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이곳에서의 (엄청난) 경험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묘사할 수(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여러모로 미성숙해서, 걍 존나 죽여주니깐 너도 한 번 꼭 가봐, 정도의 말 밖에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이야기 잘 안해주는 꼴이 자랑같이 들릴 수도 있겠다만, 이정도면 충분히 우쭐대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 그려.

그러니깐, “너도 한 번 꼭 가봐라. 존나 죽여주니깐.”

 

3. 9월, 그리고 10월의 중간 즈음

나는 (예상치 못하게) 아직 떠돌아다니고 있는 중이고 지금은 핀란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헬싱키의 10시 방향 즈음에 있는 Otaniemi라는 근교인데 Aalto University가 크게 들어선, 이를테면 college town 같은 곳이다. 친구 내외 덕분에 잘 먹고 자고 또다른 멋진 경험들을 하고 있다. 고마운 모세와 지연이.

실업자 답게(?) 원웨이 티켓으로 왔으니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 한 달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들 얘기해주지만 이거 영 불안해서 말이지. (민폐이기도 하고!) 아이슬란드의 거친 대자연 속에서도, 이곳의 감동적인 숲길을 걸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셈하고 있는 모습이 딱해 보이기도.

핀란드는 높은 위도에 위치해서 그런지 태양의 궤적이 낮고 완만하다. 날이 맑으면 하루종일 이른 석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새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노오란 볕이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을 쬘 때는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다. 햇빛은 항상 이마 언저리에서 눈이 시리도록 머문다. 미간을 찡그리고 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4. Must Be Another One

Feelin’ so confused
You dont know what to do
Afraid she might not love you anymore
And though she says she does
And hasn’t lost your trust
Who could that be knockin’ at her door?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The feelin’ never stops
And neither does the clock
Wishin’ for tomorrow today
She still says she’s true
So you start comin’ to
Just as that old knockin’ comes to stay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Must be another one
Must be another one she loves

 

2018.10.10 Otaniemi, Helsinki

Deconstruction

 

0. 시간의 구성

사람의 뇌에는 시간을 인지하는 감각기관이 없다고 한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변화가 많으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고, 큰 변화가 없다면 시간의 경험은 얼마 안 되는 것이다. 즉, 시간에 대한 지각은 일반적인 감각기관(오감)이 아닌 정보의 종합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 시간은 느끼는 것이 아닌 “구성(construction)” 된다는 말이다.

 

1. 여름

얇은 벽과 투명한 창문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자연을 원망하고 인간성 말살적 세계를 운운하고 있다. 제법 그럴싸했던 타이틀을 내려놓고 난 후 가장 걱정됐던 것 중에 하나는 의외로 전기세. 바깥보다 방구석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지난 한 달 동안, 천정 한 켠의 에어컨은 내 존재의 이유였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에어컨 발명가를 신격화하기 일쑤였고 나도 좋아요를 눌러댔다. 그러나 이 백색가전이 연신 뿜어내는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은 그 옆의 희푸른 형광등 불빛만큼이나 디스토피아적이다. 아마 전기세도 세기말적인 느낌으로 나오겠지. 전기세기말도안돼.

 

2. 경험의 과소평가

부산에서 인의형과 헤어진 후 뜻밖의 하루살이 무전여행을 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부산포항고속도로라는 길을 달렸는데, 광안대교를 타고 넘어가니 자연스레 이어지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잠이 엄청 쏟아졌는데, 옆의 호사미 수다에 일일이 대꾸해주며 수백 번 잤다 깼다를 반복하니 기분이 떨 핀 것 마냥 좋았던 것 같기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 도전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이를 처먹을 수록 경험을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둥, 으레 짐작하지 말고 일단 질러야제 라며 취하듯 말했던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대쉬보드 넘어의 풍경은 화려하지도, 크게 바뀌지도 않았다.

 

3. 8월

지난 8월은 시간을 자각적으로 “구성” 할 수 있을 정도로 별 일 없었던 것 같다. 나름 거사를 치루고 났으니 자고 일어나면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고 모든 사물이 다르게 느껴지고 햇살이 나에게만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그렇게 빨리 일어나지도 못하는 게 걍 현실. 어쩌면 그런 사치스런 게으름이 그리웠는지도.

“There is no construction without deconstruction” 이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공교롭게도 8월은 나의 지난 시간들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허무는 한 달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먼지가 너무 많이 나서 이게 또 걱정. 적당히 물 좀 뿌려줘야 하나.

영원할 것만 같던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론 기분 좋게 쌀쌀하기까지.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온다.

 

4. Negro Swan

이번 Blood Orange 앨범 너무 좋다. 앨범 이름도 존나 멋져… 

 

2018.9.9 상왕십리동

Neither an End nor a Beginning

 

1. 비전

지난 7월 2일 월요일, 사람들을 모으고 나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애써 침착하게 보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마치 예상이나 했던 건지 대부분 여느 지루한 회의시간인 것 마냥 별 표정이 없어 보였다. 나는 가급적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자꾸 가슴이 화끈 거리고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식히느라 애를 먹었다. 사무실이 두 군데에 있어 두 번씩이나. 아마 다들 비슷한 고통이었으리라.

“자금 투자의 어려움 때문에 회사를 더이상 운영할 수 없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핑계(?)였다. 사실 사업자금을 투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최후의 순간까지 여럿 루트로 존재했다. 6년 여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30억이 넘는 돈을 투자 받았는데/했는데, 마지막 데스벨리 탈출을 위한 고작 2-3개월치의 자금이 없어서 공든탑을 무너뜨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에게 없는 건 돈이 아니라 비전이었다. 안타깝게도 온라인 편집샵이라는 사업과 그 시장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떠한 매력과 미션도 찾을 수 없었다. 피벗을 계획하며 어느 정도의 염려와 감안은 했으나, 뚜껑이 열리고 난 후 그 무의미함이 주는 강렬함은 마치 과거에 건조하고 타성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때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더라. 정말 괴로운 시기였는데, 지난 3개월여 동안이 꼭 그랬다.

처음 회사를 준비할 때부터 꿈꿨던 건,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즐겁고 특별하며 환상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였지, (멍청하게도)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에 대한 시장경제적 영악함은 내 스페셜티가 아니었다. 도떼기마켓은 그 순진한 꿈의 한 굵은 줄기였고 내겐 분명 인생을 걸어볼 만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단적으로 “많은 상품을 싸게 많이 파는” 것이 사업의 거의 모든 총량인 온라인 편집샵에서는 내 스스로 의미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내적 가치 대립과 이념적 갈등 때문에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하물며 대표라는 인간부터 사업 목적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조직원들은 뭐를 바라보고 따라야 하나. 비단 비전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 차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치명적인 사안들도 산재했다. 하지만 미숙한 경영 능력, 넉넉지 못한 급여, 어설픈 조직 문화 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회사가 성장하고 전진할 수 있었던 건 도떼기마켓의 선명하고 뾰족한 사업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 끝이 몹시 무뎌져 버렸다. 투자를 얼마나 받던 간에, 더이상 그 끝을 깎아 낼 열정도 자신감도 남아 있질 않았다.

 

2. 도떼기마켓

그렇다면 도떼기마켓은 왜 하필 온라인 편집샵으로 피벗했는가 라는 의문만 남는다. 도대체 왜.

도떼기마켓 서비스는 작년 상반기까지 지난한 매출 성장과 높은 비용 구조로 인해 사업 전반에 걸쳐 메스를 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영 악화라기 보단 스타트업이 통상 겪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수정과 검증 이터레이션 시기였다. 이슈가 되었던 핵심 골자를 몇 개 꼽자면: (아마 리세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업자들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지 않을까)

  • 매입 서비스의 유저 경험 개선 (혹은 비즈니스 모델 수정) 
  • 매입 시스템 및 운영 인프라의 비용구조 개선
  • <낮은 유저 만족도 → 매입물량 정체 → 판매물량 정체 → 매출 정체> 로 이어지는 악순환 개선
  • 국내 시장에서 패션 리세일 비즈니스의 유닛 이코노믹스 실현 가능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해법과 빠른 실행 방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당시엔 어떻게든 반드시 매출을 올려야만 했고 최선의 대안을 한 곳에 집중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마지막 원샷이었던 셈. 그러나 오히려 커머스 플랫폼을 직접 개발하고 의류를 팔아봤다는 경험과 새상품 판매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이 결국 온라인 편집샵이라는 독이 든 사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피벗을 결정하던 당시에는 나름 심도 깊은 연구와 잠 못 이루는 고뇌를 한다고 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얄팍하게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가. 후회는 없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사실 완전한 피벗은 아니었다. 도떼기마켓은 유니온풀 플랫폼 내에 입점한 형태로 존속했고, 매출원 확보 후 다시 고도화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비록 도떼기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은 미완 혹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함께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시장을 개척했던 모든 유니온풀러들은 위대한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새것과 중고의 관계는 마치 상하수도의 그것과도 같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매일 사용하는 상수(새것)는 어떻게든 하수(중고)가 된다. 하수가 깨끗이 정화되고 효율적으로 재사용될 수 있어야 상수 역시 무의식의 영역에 온전히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사물도 마찬가지. 도떼기마켓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다시 제 2의 도떼기마켓을 만들겠지. 그날이 온다면, 우리의 치열했던 과거가 그들에게는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3. 2018년 7월

회사 문을 닫는 과정은 마치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심신이 분쇄되는 듯한 고통과 허무함의 연속.

  •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긴 했지만 영업 종료한다는 생각은 최후의 순간까지 하지 않았다.
  • 어찌 그리 신속하게 소식을 접했는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오히려 나보다 격앙되어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 상황을 기회 삼아 잇속 챙기려고 덤비는 상식 이하의 부류도 있었다.
  • 굳이 더이상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도 끝까지 남아 도와준 사람들,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절대 잊지 않으리라.
  • 폐업으로 인해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여 명의 퇴직금 총 1억 5천만 원 가량을 정상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나름 마지막까지 구성원들에 대한 도리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 부족한 퇴직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거의 모든 사무실 집기들을 발품 들여 팔았다. 하나하나 사무실을 떠나 보낼 때의 기분은 슬픔을 초월해서, 몹시 엿같더라. 마지막 남은 책상들이 빠지고 텅 빈 사무실, 불과 몇주 전만 해도 북적이고 분주했던 모습들의 잔상이 눈 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그러다가도 집에 가서 맥도날드 처먹으며 슛포러브 볼 땐 낄낄거리고. 또 다음날 존나 울적하고 시발. 감정의 킹다 카 라이드.
  • 끊임없이 밀려오는 자책감과 정체 모를 두려움은 자연스레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강제적으로 되뇌이게 만들었다. 육체는 현재를 바라보지만 정신은 온전히 과거에 갇혀버린.

7월, 지독했던 더위만큼이나 견디기 벅차고 혼미했던 한 달이었다.

 

4. 주식회사 유니온풀

기업을 만들고 경영한다는 건 정말 멋지고 가치있는, 고귀한 영역의 일인 것 같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어마어마한 돈을 납세까지 하는 기업 경영인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 받아야 할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들과 균형을 잃은 근로기준법,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특유의 반기업 정서 속에서 한평생 기업을 끌고 가시는 분들을 보면 경외심 마저 든다.

나 역시 유니온풀을 남 부럽지 않은 좋은 기업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름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진실되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밥 먹듯 주 100시간 넘게 일했고, 치열하게 공부했으며, 회사와 구성원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허다했다. 부족했지만 항상 나누고 베풀기 위해서도 애썼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의 반복이었지만 끝내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비록 회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니온풀을 운영하면서 뇌의 허물을 수십 번은 벗겨낸 것 마냥 다양한 분야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 같다.)

한편, 산이 높으면 골도 깊기 마련. 창업자의 삶은 대부분 희생과 번뇌로 점철되는 것 같다. 모든 창업자들이 나와 같진 않겠지만, 나는 지난 시간 대부분을 온전히 나 자신으로서 살지 못했다. 회사를 위해 삶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타협해야만 했다. 가족과의 시간, 연애, 사교생활, 심지어 성격까지. 언젠가부터 일을 떠나서는 제대로 된 기쁨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가족과의 대화, 친구의 경사, 심지어 나의 건강 보다 중요했던 건 구성원들의 안녕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일 뿐이었다. 매사에 나보다 회사가 먼저였고, 단 한 번도 편히 쉬질 못했다. 결과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땐, 회사 밖에서는 편집증적이고 사이코패틱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여유도 유머도 낭만도 없는 무미건조한 생명체. 무엇보다도 이런 바스러질 듯한 감정/정신상태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절제하며 다스려야 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었다.

“이 순간만 지나면 덜 바빠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회사가 잘 되는대로 또는 골이 깊어 지는대로, 기업 경영에 덜 바빠지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는 순간 역시 언제인지 알 수 없다. 혹여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 삶의 궤적은 어떠할까. 온전히 그들 자신으로서 살고 있을까. 일을 떠나서는 행복한 인생일까. 내가 유별난 걸까.

Whatever.
여기서 잠시 멈춘 게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당분간 나는 돈 버는 일과는 상관 없는 곳에서 기쁨을 찾고 싶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을 잃은 건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이겠지. 끝도 시작도 아닌.

 

2018. 8. 1 역삼동

제이 다니엘이 되는 꿈을 꿨다.
직업이 무려 (디제잉이 부업인) 생계형 은행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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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풀 사무실도 Zappos같이 만들어 볼려고
넝쿨식물 19개를 그냥 막 충동 주문.
했으나, 저건 조화(일 것으)로 판명..

주문한 식물들과 인생의 공통점이 있다면
환불 불가능.

좋든 싫든 간에 undo 버튼은 영원히 활성화되지 않는다.
넝쿨의 줄기처럼, 끊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이제 정원사를 채용해야 되나.

히피정신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공유하는 것으로 예술과 창작정신을 중요시한다.
유독 한국만 히피문화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 컴퓨터 세상으로 넘어온 것 같다.
우리 사회에도 히피문화가 한 번이라도 휩쓸었다면 사람들은 좀 더 개방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사랑과평화

‘자유’는 사실 냉엄하다. 그것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한 방종과 자유는 결정적으로 다른 위치에 존재한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자유는 의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칸트는 우선,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이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물은 본능에 지배를 당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눈앞에 바나나가 있으면 무조건 먹으려 한다. ‘먹지 않는다.’라는 선택의 여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을 갖추면서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바나나가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나나를 정물화의 모티프로 삼기도 한다. 선택의 여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본능이나 욕구에 현혹되지 않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 무엇이 ‘의무’인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깨달음을 따르는 것이 자유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유가 냉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의미에서다. 하지만 자신의 꿈에 다가가려면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자유로워져야 한다.